세상 구석 구석의 이야기

엉뚱함이 서려있는 엽기 LP 턴테이블 모음전

LP를 돌리는 녀석들

레트로란 광기에 사로잡힌 욕망 덩어리들..

세상이 빠르게 변할수록 지나간 것에 대한 추억을 소중히 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추억은 복고, 또는 레트로란 이름으로 이전의 가치를 훨씬 웃도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만들어낸다. 현대인의 예전 것에 대한 추억은 아름답지만 때론 그것을 넘어 집착으로, 그리고 광기에 사로잡히곤 한다. 태크지 편집장 이야기다. 갑자기 LP에 관련된 글이 읽고 싶노라 메시지를 날려왔다. 아니 그렇게 레트로가 좋으면 비둘기를 보내든가..

우리가 흔히 ‘LP’ 부르는 녀석들은 ‘롱플레이(Long Play)’의 약자다. 써놓고 나니 왠지.. 다른 이야기가 쓰고 싶어진다. 어쨌거나 이름을 보면 ‘그럼 숏플레이(SP)도 있나?’라고 생각할 텐데, SP는 ‘스탠다드 플레이’의 약자다. LP와 크게 다르기보다 재생할 수 있는 시간에 따라 크기와 이름이 달라진다.

LP플레이어, 혹은 턴테이블이라고도 불리는 이 녀석은 전축이라 많이 불렸었는데, 본명은 ‘포노그래프 (Phonograph)’. 한 글자가 부족해 보이는 건 당신의 기분 탓이다. 이 녀석은 일본으로 넘어오며 축음기라는 괴상한 이름으로 번역되는데, 대부분이 그렇듯, 한국에서도 일본식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다. 조선으로 먼저 들어왔다면 비닐전축.. 정도로 불렸으려나? 역사는 유구하다만, 실제로 가동할 수 있는 레코드는 1877년 에디슨이 발명했는데, 처음부터 음악을 들을 용도는 아니었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조장치로 고안되었다 전해진다.

그 뒤로는 우리가 흔히 아는 이야기다. 카세트테이프가 등장하고, 소니의 워크맨이 세상을 삼켰으며, CD를 거쳐 소니의 실패한 역작 MD(Mini Disk)를 지나 아이팟과 스마트폰의 MP3, 무손실 음원의 시대를 맞이했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많은 매체가 생겨나고 또 사라졌지만, LP만은 아직 끈질긴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모든 음반 산업이 그들을 외면해도 변치않는 매니아들의 사랑 속에서 꿋꿋이 버텨나간다.

초기 턴테이블은 무직한 덩치를 줄이는 것이 집중한다. 모든 전자제품이 그렇듯 첫 째 목표는 다이어트다. 집 안에 있어야 할 가전제품을 문 밖으로 끌고 나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혁신이기 때문이다. TV는 DMB에서 인터넷 모바일 TV로, 전화기는 스마트폰으로 진화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LP는 한 시대를 풍미했고, 많은 음악 예술가의 목소리를 세상에 퍼뜨렸지만, 젊고 새로운 저장매체에게 설 자리를 잃어버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비뚤어진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은 점차 목적을 잃고, 어느샌가 뜻 모를 예술로 승화한다. 고풍스럽기만 하던 턴테이블은 점차 당황스러운 변태를 시작했다. 레코드 위를 달리는 자동차에 바늘(칩)과 스피커를 달아놓은 녀석도 있다. 레코드판 위를 빙글빙글 돌며 음악을 재생한다. 뭔가 병맛스럽긴 한데 조금 더 찾아보니 이건 애교에 불과했다.

3D 프린터로 IoT 산업에 도움될 무언가, 혹은 다른 획기적인 물건을 창조하랬더니 LP 레코드를 찍어냈다. 소리가 아직 선명하진 않지만, 분명 음악이 들린다. 이 프로젝트는 대학에서 나노 기술과 물리학을 연구하고 현재는 DIY 정보 사이트 ‘instructables.com’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활동하는 ‘아만다 키자웨이’의 2012년 작품이다. 나노 과학과 물리학이 도데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정확히 이해할 수 없지만, 한 과학자의 손에서 탄생한 것은 분명하다.

2013년에는 무슨 약을 먹었는지, 120와트 레이저 절단기를 이용해 원목에 홈을 파고 음악을 기록하기에 이른다. 시도만으로도 당황스러운데, 음질이 좋지는 않지만 알아들을 수 있을 수준의 음악이 들린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한편 스웨덴에서는 하다 하다 얼음으로 LP 레코드를 만들어 낸다. ‘Shout Out Louds’라는 그룹은 단 한 번만 재생할 수 있는 얼음 레코드를 10장 한정판으로 제작한다. 만들어진 얼음을 바로 판매하는 것은 아니고, 얼음을 얼릴 수 있는 틀과 생수 한 병을 판매한다. 병에 들어있는 물을 틀에 넣어 얼린 뒤 얼음덩어리를 꺼내면 훌륭한 LP 레코드가 탄생한다. 얼음이란 소재만으로도 여러가지 문제점이 예상되는데, 이들의 머릿속에 그딴 걱정은 1그램도 함유되지 않은 모양이다.

작년 12월, 일본의 뮤지션 ‘타쿠마루 슈고’는 자신의 싱글 앨범을 골판지 LP로 제작한다. LP가 들어있는 케이스를 접고, 판 끝을 투명한 LP 레코드에 올리고, 손수 정성스레 돌려주시면 음악이 흘러나온다. 전자장치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적당한 빠르기를 즐기기 위해 노력이 필요해야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screenshot-vimeo.com 2015-08-28 15-17-57

종이로 LP 레코드를 구현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이보다 4년 정도 앞서 ‘페이퍼 레코드 플레이어’가 제작된 바 있다. 결혼식 초대를 위해 만든 물건이라는데, 초대장을 펼쳐 바늘을 세우고 아크릴 판을 돌리면 소리가 흘러나온다. 얇은 종이를 이용한 탓에 다소 소리가 얇고 시끄럽지만, 그럴싸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종이를 바늘과 스피커로 쓰는 턴테이블도 있다. 원추형으로 접힌 종이를 레코드에 올려놓으면 고깔 모양으로 말린 종이의 입구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구조다. 이 녀석도 인간의 노동을 강요하는 아이템인데, 최대한 깨끗한 소리를 들으려면 테이블을 시계방향으로 331/3rpm으로 돌려줘야 한다고 한다. 도데체 어느정도 속도인지 감조차 잡히질 않는다. 디지털 미디어가 범람하는 시대에 재미있는 시도라고는 생각한다만, 이렇게까지 들어야 할까 싶은 생각이 더 크다. 

130226ECbarky2
vertical-vinyl-record-player-toc-roy-harpaz-5

물론 모든 턴테이블이 당황스러운 변태를 이어온 것은 아니다. 어쨌건 LP 레코드는 현대 디지털 음원이 들려주지 못하는 감성을 전해주는 것은 분명하기에 여전히 수요가 존재하고, 그에 걸맞은 제품들이 이따금 등장하고 있다. 다만, 요즘에는 LP 레코드를 구하기도 그다지 쉽지 않고, 유명 음반의 가격은 매니아가 아닌 이에겐 터무니없게 느껴질 수밖에 없기때문에 다소 먼 이야기임은 분명하다. 그냥 가끔 예전에 이사하면서 버렸던 LP들이 떠오른다.. 

 

글/ 테크G 김상오 shougo.kim@techg.kr


Comments are closed.

포스트 카테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