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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산행, 일본 캠핑 속 묘미

‘허패의 집단 가출’이라는 책이 있다. 유명 만화가인 허영만 씨를 비롯한 40대 7명이 집단 가출(?), 캐나다 로키산맥을 28일 동안 여행한 기록을 담고 있다. 허패란 허영만 씨와의 인연으로 뭉쳤다는 이유로 대장이 된 그의 성을 따서 허패라고 부른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문구는 우보산행, 그러니까 소처럼 천천히 걷는다는 뜻이다. 돗토리는 이런 점에 가장 부합하는 가장 가깝고 만만한 곳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우보산행의 뜻은 자연을 음미하면서 동화되자는 데에 있다. 마치 과녁을 향해 무작정 ‘돌격’만 외치던 30대보다는 이젠 뭔가 주위를 둘러보고 싶은 게 40대다. 지구 정복보다는 잠시 주저앉아 머물러도 좋을 나이다.

책에선 캠핑장에서 야영을 즐긴다. 코스프레하듯 나선 여행 아닌가. 하루 정도는 이국에서의 캠핑도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돗토리 현에선 심심찮게 캠핑장을 볼 수 있다. 바닷가에 위치한 곳도 있지만 이곳보다 이국적인 분위기를 만끽할 만한 곳을 찾으려면 다이센산(大山)으로 가는 게 좋을 듯 싶었다.

다이센산은 해발 1,728m가 넘는 일본 100대 명산 가운데 하나다. 렌트카로 이곳 도로를 달려보면 마치 제주도의 한적한 도로와 대관령 옛길이 교차한다. 무엇보다 규모가 상당하다. 한참을 달려도 엄청난 규모의 원생림 서식지가 끝나지 않는다. 이곳은 서일본 지역에서 가장 큰 너도밤나무 원생림 서식지라고 하는데 너무밤나무는 자연 정화력이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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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노쿠니 캠핑장은 다이센산 국립공원 안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해발 고도가 대단히 높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가족이 함께 즐기기 좋은 캠핑장이라는 인상을 준다. 실제로 캠핑장에 들어서면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넓은 잔디밭이 있다. 이곳에는 나무로 만든 놀이기구 같은 것도 있다.

로비에선 다운힐 사이클링 상품 같은 것도 팔고 있다. 가격은 몇 만원은 나가는데 표고차가 850m 나는 다운힐, 그러니까 아래쪽으로 달려서 힘줄 필요 없이 내려가고 나면 다시 차로 올려다 주는 상품인 것 같다. 도로나 자연 풍경, 공기가 좋아서 트레킹이나 MTB, 자전거 같은 걸 즐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캠핑장에선 모든 장비는 빌릴 수 있다. 4인용 텐트에 식기세트, 식탁과 의자까지 다 갖췄다. 바비큐 세트 같은 것도 소고기와 돼지고기 각종 부위, 소시지와 양배추를 비롯한 야채까지 담아서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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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를 빌리고 나서 인상적이었던 건 담당자가 직접 와서 텐트 설치 방법은 정말 ‘정석대로’ 알려준다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있더라도 꼼꼼하게 원칙대로 텐트를 정확하게 칠 수 있게 하나씩 알려주고 참가자가 직접 설치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고 보니 이제껏 어디에서도 이렇게 정석대로 텐트를 치는 법을 알려준 곳은 없었던 것 같다.

이곳이 괜찮았던 건 가족이 즐기기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이곳은 매일 저녁 7시가 되면 캠프파이어를 진행한다. 따로 해주는 건 아니다. 당일 캠핑장을 찾는 모든 사람이 참여해 즐길 수 있는 것인데 멀리서 봤지만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흥겹게 어울리는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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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잔디밭이나 아이들이 즐길 만한 시설도 잘해 놨다. 3개 지역으로 나뉜 캠핌장 중간에는 널찍한 공용홀과 개인 샤워실, 화장실이 있다. 설마 이런 곳은 조금 더럽지 않을까 싶어 화장실에 가보니 어김없이 깨끗하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화장실을 어떻게 치울까 싶다. 샤워실도 공짜인데 따뜻한 물도 잘 나온다.

바비큐 세트를 굽고 흥겹게 둘러앉아 다이센 G비어를 한잔씩 반주로 곁들였다. 다이센산에서 직접 재배한 목아로 만든 이 지역 향토 맥주라고 한다. 색이 조금 진한 편이데 맛도 좋은 편이다.

일본 사람들은 캠핑장에 가면 보통 10시 정도면 잠자리에 든다고 한다. 조금 떠들어야 하는데 이걸 어쩌나 싶었지만 고맙게도 옆쪽에 텐트를 친 젊은 일본인 부부 두 쌍은 불도 끄고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새벽 1시까지 안 잔다. 오랜만에 빼곡하게 나무로 둘러싸인 어둠 속 숲에서 밤하늘을 만끽했다. 별이 쏟아진다. 언제 이런 하늘을 본지도 기억이 안 난다. “이렇게 멋진 밤하늘을 언제 봤더라…” 지칠 새로 없이 인생 고민을 안주 삼아 새벽까지 그렇게 떠들다 잠들었다.

여기가 어디?

※ 일본 돗토리. 톳토리는 일본 중부 지방에 위치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1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이곳에선 일본 100대 명산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해발 1,728m 다이센산(大山)과 사구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글/ 트렁크로드 이석원 lswcap@trunkroad.co.kr

트렁크로드

Trunkroad. 간선도로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간선도로는 도로망의 기본이다. 중요한 도시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듯 트렁크로드는 여행을 위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연결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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