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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과하이드] 하이드편 :: 슬럼프를 견디는 마법의 문구

슬럼프를 견디는 마법의 문구

‘그래.. 지금은 이걸로 됐어’

약 7년 전에 심각한 슬럼프에 불면증이 겹쳐 다시는 생각도 하기 싫을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낸 적이 있다. 그 증상과 바닥을 쳤던 경험들은 일일이 예시를 들지 않아도 다들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이 직접 겪어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들은 얘기가 있을 것이고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많이들 다루고 있으니까. 그래도 내가 겪었던 그 힘든 시기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도록 딱 하나의 예를 들자면, 나는 그 슬럼프 + 불면증 시기에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결국 업무에 대한 걱정과 오지 않는 잠 때문에 새벽 두 세 시 쯤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사무실에 나갔었다. 나가서 일을 하거나 벽 쪽에 있는 소파에서 출근시간까지 쪼그리고 잤다. 참… 지금 생각해도 한숨 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한 정도의 바닥을 치는 슬럼프는 아니지만 재작년에 유사한 상황을 만났고 상당히 비슷한 증세가 다시 왔었다.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상황이 어떻고 개인적인 대비가 어떠했든지 간에 슬럼프라는 것은 찾아올 때가 되면 네이게이션을 장착한 서울 토박이처럼 골목골목을 잘도 지나와서는 정확히 내 앞에 착~ 하고 멈춘다. 그러고 나서 창문을 지익 내리고 나에게 묻는거지. ‘어디까지 가세요? 타세요’ 하고. 어, 어 하다가 그렇게 악운의 옆자리를 얻어 타는 순간 나는 가고자 했던 곳과는 전혀 다른 방향과 이상스런 속도로 가는 슬럼프의 험난한 길에 오르는 것이고. 유턴도 안 되고 빠지는 길도 없다.

이전의 경험으로부터 내가 얻은 교훈이 있다면 슬럼프가 닥쳤을 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뭐,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슬럼프는 극복되지 않으니까 슬럼프인 것이다’라는 다소 암울하고 극단적인 결론이다. 카톡에 보면 많은 동료, 선후배들이 프로필에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등의 문구를 올리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건 십중팔구 그 사람들이 슬럼프나 궁지에 몰려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 경우엔 그런 문구들이나 그런 문구를 언급하며 누군가가 해주는 조언들이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었다. (그것을 프로필에 올린 동료, 선후배들이 그 문구로부터 도움을 받았는지의 여부도 모르겠다.)

하여간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뭐냐하면, 재작년의 슬럼프는 놀랍게도 조기에 극복 혹은 종료되었다는 것이다. 슬럼프일 수밖에 없는 상황과 그것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개인적 능력과 의지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슬럼프는 봄눈 녹듯 사라졌다. 정신 차리고 보니 정신이 차려져 있었다, 는 표현이 좋을 듯하다. 물론 그냥 ‘어? 어디 갔어?’ 이런 식으로 뚝딱 해결된 것은 아니고 나름 계기랄까 그런 것은 있었다.

 

첫 번째는…

심호흡이었다. 슬럼프를 극복하고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시작한 호흡은 아니었고 그런 종류의 호흡법도 아니었다. 영화를 보다가 어느 장면에 등장한 ‘라마즈 호흡법’을 따라해 봤는데 그게 순간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듯해서 계속 하다 보니 슬럼프 증세에 동반되는 불안, 초조를 잠재우는데 도움이 되었다. (영화의 장면은 결혼하지 않은 동거 커플이 임신을 해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과 함께 클리닉에 가서 임산부를 위한 ‘라마즈 호흡법’을 배운다는 뭐 그다지 신통치 않은 것이었다. 참고로…)

 

두 번째는…

내 마음의 움직임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어디서 읽거나 보고 들어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이런 일이 있었다.

일주일 정도는 야근을 해야 완성될 보고서의 작성이 내 앞에 떨어졌는데 보고기일 이틀 전까지도 아무 진척이 없었다. 진척이 없었던 이유는 별 것이 없고 그냥 그 일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보고서를 작성해서 결재를 올리려면 이전의 사업 혹은 다른 기업의 현황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파악한 후 대책을 내놓아야 했는데 대책은커녕 무언가를 읽는 것 자체가 싫은 상황이었다.
그냥 읽는 것 자체가 되지 않았다. 일은 하기 싫은데 생각은 끊이지 않아서 인생이란 게 뭔가, 사는 건 뭐고 나는 어디로 가며, 인생은 이렇게 흘러가는 것인가, 내가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은 얼마나 많으며 해보고 싶은 일은 너무나 많은데 한 일은 거의 없네, 이런 정신상태. 그러다가 보고기일 이틀 전이었던 바로 그 날, 밤에 집에 들어와 거실에 앉아 있는데 돌연 너털웃음이 터져 나왔다. 현재의 통제되지 않은 마음의 상태와 보고서 초안조차 작성하지 못했다는 스트레스가 합쳐지면서 미친 듯이 하하하 하고 웃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에는 마치 깨달음을 갑자기 얻은 수도승처럼 혹은 심오한 무공심법의 오의를 깨달은 무림인처럼 내면에 조용한 정적이 찾아들었다. 그리고 나는 ‘아, 나는 지금 일이 하기 싫구나. 아, 나는 지금 정신적으로 매우 피폐하구나. 지금 나는 힘든 슬럼프의 시기이며 몹시도 괴로워하고 있구나’ 하고 속으로 되뇌이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담담히 바라보고 묘사하게 되었다. 잠시 그러고 있자니 내가 처한 상황은 감정적인 국면에서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즉, 슬럼프는 슬럼프고 일은 일, 보고는 보고이며 인생은 인생인데 그런 각각의 상황과 사건들에 나를 엮어 넣어서 감정적으로 지치고 우울해할 필요는 별로 없지 않은가 하고 새삼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런 마음의 평온상태가 찾아온 후 조용히 심호흡을 하자 ‘그래. 지금은 이걸로 됐어’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뭐, 괜찮잖아. 이 정도면 괜찮잖아, 어때. 지금은 이 정도로 좋아. 괜찮아.
보고는 성공적으로 잘 끝났다. ‘지금은 이걸로 됐어’ 라는 생각을 한 그 날, 무언가 획기적으로 내 내면이 변한 것은 아니었지만 잠을 제법 잘 잤고 다음 날 씩씩하게 사무실에 나가서 폭풍 보고서 작성을 한 후 마무리까지 잘 했다. 그 후로도 힘든 일,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마다 스스로 ‘괜찮아. 괜찮잖아. 이 정도로 됐어. 지금은 이 정도로 하는거야’ 위로하고 있다. 스스로의 위로에 다시 잔잔한 힘을 얻게 되면 고민과 걱정에 휩싸여 잠을 이루지 못하고 책상 앞에 멍하니 앉아 있게 되는 나날은 줄어든다.

가만히 지난날의 나를 들여다보면, 그리고 주변의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직장생활을 하는 현대인들은 상당히 자기자신을 채찍질하는데 익숙한 듯하다. ‘이 정도로 되겠어? 겨우 이거야? 이것밖에 안 돼? 나라는 놈이 그렇지 뭐’ 하는 식으로 말이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소중하다’는 말이 흔한 것 같지만 실제로 ‘나’를 믿고 어려움에 처한 자기자신을 위로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날 밤 내가 한 것은 다름 아닌 자기위로였다. 격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려 업무가 좀처럼 진척되지 않을 때, 우리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스스로를 가장 잘 아는 ‘나’로부터의 진심어린 위로가 아닐까.

글/ 남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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