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구석 구석의 이야기

수동변속기의 매력, 벤츠 CLA 200 CDI

2015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취재를 위해 독일 현지에서 탈 차가 한대 필요했다. 숙소와 전시장을 오가는 건 물론이고, 마지막 날 공항까지 편하게 안내해 줄 그런 차였다. 우리가 예약했던 차량은 신형 파사트였지만, 해외 렌터카 업체가 늘 그렇듯 막상 차량을 픽업할 땐 다른 차의 키가 손에 쥐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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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출장길에서 예약한 차량을 받은 일은 거의 없다. 지난 출장 땐 피아트 500을 예약했는데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특별히(?) 피칸토(기아차 모닝)로 대차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차가 없어서라고 한다. 그럼 예약을 도대체 왜 받는 건가? 자국민들은 이런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따져봤자 손해 보는 건 우리다. 뭐 말도 잘 안 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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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우리는 파사트 대신 CLA 200 CDI 모델의 키를 건네받았다. 가격이 비슷했나 보다. 가격이 비슷한 차라는 것보다 크기가 비슷한 차라는 게 더 중요하다. 짐이 많아 뒷좌석 공간이 큰 차가 필요했다. 특별히 벤츠로 대차해줬다는 직원의 말에 약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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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렌트하는 경우 대부분 수동변속기 차량이 제공된다. 국내에선 수동변속기를 탑재한 차량을 만나보기 힘들다. 국내 차량만 그런 게 아니다. 수입차의 경우도 수동변속기를 탑재한 모델을 만날 확률은 대우 스테이츠맨을 보는 것보다 힘들다.

출발 전 수동변속기를 만져본다. 자동변속기만 운전하다 수동변속기를 오랜만에 조작해보니 기분이 좋다. 클러치를 밟고 원하는 단수로 변속기레버를 옮기고 나면 클러치에서 발을 떼고 가속페달을 밟는다. 이 맛에 ‘차를 내가 움직인다’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져온다. 분명 자동변속기보다 불편할 순 있다. 하지만 자동변속기에선 느낄 수 없는 감성이 수동변속기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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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러치가 너무 가볍다. 물을 흠뻑 빨아들인 스펀지를 밟는 기분이다. ‘이 정도면 무릎 아프다는 소리 안 나오겠네’ 싶다. 문득 수동변속기를 마지막으로 운행했던 기억을 떠올려봤다. 2013년 초, 시트로엥 DS3 레이싱 버전 시승이 수동변속기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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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디젤 엔진은 출발 시 클러치 조작 미숙으로 시동이 꺼지는 불상사가 잘 생기지지 않는다. 가만 보니, 출발할 때 클러치에서 발을 떼면 rpm이 상승한다. 1000rpm까지 상승하기 때문에 가속페달을 밟지 않아도 출발이 매우 부드럽다. 클러치를 완전히 떼지 않은 채, 가속페달을 밟아 차를 괴롭히는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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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변속기가 자동변속기 대비 연료 효율이 좋다는 건 대부분이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큰 매력은 ‘운전의 재미’라고 생각한다. 가속성능이 좋고 최고 속도가 얼마가 나오며 코너를 얼마나 잘 돌아나가는지와는 다른 이야기다. 단순히 내가 원하는 시점에 변속할 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큰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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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고 원하는 시점에 동력을 끊고 2단으로 레버를 밀어 넣는다. 1단에서 엔진회전수를 어느 정도 길고 높게 가져간다면 바로 3단을 넣어도 된다. 단순히 오른손으로 변속기 레버를 밀어 넣는 것뿐이지만, 기계는 쏙쏙 나의 손길을 빨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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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 200 CDI는 고성능 차량이 아니다. 자동변속기, 수동변속기 큰 차이 없는 동력 성능일 것이다. 하지만, 수동변속기를 조작하는 것만으로 고성능 차량을 운전하듯 얼마든지 재미난 운전을 할 수 있다. 다행히도 우리가 다니는 길은 고속도로가 많아서 가장 문제가 되는 시내주행은 거의 없었지만, 이 정도 클러치 페달의 무게감이면 시내 주행도 어느 정도는 괜찮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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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고속도로는 운전 조건이 아주 좋다. 구간마다 정해진 제한속도가 있는 곳도 있지만 속도제한이 없는 곳도 있다. 1차선은 추월만을 위해 존재하는 구간으로 추월 후엔 바로 하위차선으로 복귀한다. 고속도로지만 앞만 보고 운전하지는 않는다. 항상 후방을 주시하며 운전자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에티켓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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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의 연료 효율을 위해, 기어변속 시점을 계기판에서 알려준다. 시프트업을 위해서는 변속할 단수와 함께 화살표가 위로 향하는 그림이 나오고, 속도 대비 높은 단수를 물고 있을 때에는 적절한 단수와 함께 아래 화살표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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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변속기가 오랜만이어서 그랬을까? 6단에서 고속도로 주행을 하면서 휴게소를 들어가려는데 ‘말타기’가 시전됐다. 6단에 물린 상태로 차량을 거의 세웠기 때문에 생긴 실수다. 그만큼 자동변속기에 길들여져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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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변속기만을 운전하던 사람은 수동변속기를 운전하기 힘들다. 수동변속기를 운전하던 사람은 너무 쉽게 자동변속기를 운전한다. 당연히 수동변속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자동차에 대한 이해도가 자연스레 높아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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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변속기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내에서는 ‘수동모드’조차 사용할 줄 아는 이들이 많지 않다. 단지, ‘D’모드는 차량을 전진할 때 사용하고 ‘P’는 주차, ‘R’은 후진으로 이동할 때 사용하는 걸로만 생각한다. 물론 맞다. 하지만 자동변속기도 수동모드가 대부분 존재해 상황에 맞게 사용할 수 있다. 자주 사용하지 않더라도 어느 상황에 사용하면 좋은지는 알아 두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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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는 원하는 모델에 수동변속기를 장착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동변속기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수동변속기의 판매 비율이 워낙 저조하기에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수동변속기를 원하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판매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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