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구석 구석의 이야기

에치고유자와, 그곳은 설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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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까지 하얘졌다(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夜の底が白くなった)”

개인적으론 설국을 읽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책만 끼고 살았던 여동생도 40이 넘어선 총기가 다했는지(아니면 인상 깊게 남은 게 이것뿐이었지 몰라도) 기억나는 구절은 이 첫 문장 뿐이라는 말에 조금 위안이 된다.

굳이 이제 와서 설국 타령을 하게 된 이유는 설국이 탄생한 배경인 에치고유자와에 갔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이 에치고유자와에 있는 온천장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들과의 삼각관계 속에 미묘한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했다는 것이다. 야스나리는 실제로 1934년 에치고유자와의 한 온천에서 고다카 기쿠라는 게이샤를 만난 적이 있는데 이 경험을 토대로 소설을 썼다고 한다. 자신의 경험이야 찰나였겠지만 쓰는 과정은 꽤나 고된 일이었던 모양이다. 1935∼1948년에 걸친 13년 동안 완성한 작품이라니 말이다. 에치고유자와는 이런 설국이 탄생한 고장이다.

유일하게 설국 내용에서 알고 있는 “터널을 지나자 설국이었다”는 말은 실제로 터널을 지나자 곧바로 증명(?)됐다. 에치고유자와는 때마침 방문 전 주(12월초)까지 9일 내내 폭설이 쏟아졌다고 한다. 그야말로 설국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느라 옆 앞 주차장에 가보니 이제야 눈을 치우는 모습이다. 눈이 와도 너무 많이 온 모양이다. 도로 곳곳은 거의 2m는 됨직한 높이로 눈이 쌓여 있다. 잠시 방문한 객 입장에선 멋진 풍경이자 설국이었지만 지난주에는 폭설 탓에 사망자가 나올 정도였단다.

에치고유자와가 설국이라는 증거는 이것저것 찾아봐도 얼마든지 있다. 이곳은 원래 적설량이 많기로 유명하다. 시베리아 쪽에서 발생한 눈그름이 동해를 거쳐 에치고유자와에 오면 이곳 산맥과 맞닿게 된다. 그 탓에 지난 10년 동안 이 지방에 내린 적설량은 평균 잡아도 11.7m나 된다고 한다. 우리로 따지면 반대 방향이지만 서쪽에서 태백산맥을 만나 강릉이나 속초 쪽에 쏟아지는 눈을 떠올리면 쉽다.

어쨌든 이곳을 방문한 목적도 이 눈 때문이다. 이곳은 도쿄에서 1시간 30분 정도면 찾을 수 있는 곳에 위치했지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눈이 많이 온다. 이런 조건 덕에 마을 전체가 스키로 유명하다. 이곳에 위치한 스키 리조트 수만 해도 16개에 달한다고 한다. 실제로 보니 역 앞쪽부터 스키장이 하나씩 눈에 띈다.

물론 이곳이 설국으로만 유명한 건 아니다. 에치고유자와는 니가타현에 위치하고 있다. 니가타현은 우리로 따지면 이천처럼 쌀로 유명한 곳이다. 일본 최고의 명품쌀로 꼽히는 고시히카리(コシヒカリ)라는 품종의 원산지가 바로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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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맛좋은 쌀이 유명하다 보니 이곳에서 유명한 또 다른 포인트는 사케, 술이다. 좋은 쌀로 지은 사케가 유명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에치고유자와에서 사케를 만나는 건 어쩌면 눈보다 빠르다. 에치고유자와 역에 내리면 한쪽으로 전시관이나 상품 판매점이 모여 있는 게 보인다. 이곳에 가보면 에치고유자와 방문객이라면 한번쯤은 가보는 폰슈칸과 사케온천이 한곳에 모두 모여 있다. 둘다 합쳐서 가봐야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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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슈칸은 쉽게 말하자면 사케 시음장이다. 이곳에 가면 벽면 전체에 자판기가 가득하다. 카운터에 가서 500엔을 내면 잔과 코인 5개를 준다. 이걸 받아서 자판기 앞쪽에 가서 마음에 드는 걸 고른 다음 잔을 올려놓고 코인을 넣으면 사케가 나온다. 일본말로 적혀 있어서 어떤 게 맛있는지는 잘 몰랐지만 상을 받은 사케의 경우에는 자판기 앞쪽에 마크 같은 걸 붙여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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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있는 사케는 이 지역 양조장이 만든 사케 500여 종이 있다고 한다. 사케를 한 잔 뽑으면 생오이 같은 안주를 하나 사서 한켠에 있는 된장이나 소금 같은 걸 안주 삼아 찍어서 먹으면 좋다. 어쨌든 폰슈칸 자체는 그리 넓은 공간이 아니어서 주당이 아닌 경우라면 몇 잔 마셔보는 체험 정도로 20여 분 정도면 다 볼 수 있다.

사케온천도 에치고유자와 역에 있다. 이곳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온천수에 사케를 부은 것이다. 여행객이라면 짐부터 넣어두는 게 좋다. 입구 앞쪽에 보면 커다란 코인 락커가 있다. 이곳에 가방 같은 건 넣어두면 된다. 100엔을 넣어두면 나중에 되찾을 수 있다.

사케온천 자체는 크기만 보자면 동네 목욕탕 수준이다. 좁고 작다. 물론 이곳은 사케온천이라는 장점 덕에 방문하는 곳이니 크기가 큰 문제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욕탕에 사케를 부었다니 혹시 술 냄새가 진동하는 게 아닐까 걱정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다. 온수와 섞이면서 알코올 성분이 공중으로 날아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온천수에 사케를 부으면 다른 효과도 있다고 한다. 모공이 넓어지고 노폐물도 더 잘 빠져나간다고.

참고로 에치고유자와에 간다면 굳이 사케온천(이곳은 그냥 한번쯤 궁금증에 가보면 좋은 정도 아닐까 싶다)이 아니더라도 온천은 몇 군데 정도 가보는 게 좋겠다. 에치고유자와를 포함한 니가타 자체가 일본에선 3번째 온천 지역이라고 한다. 이 지역에 있는 온천 수만 해도 154개라고 하니 이곳까지 와서 온천을 안 하면 서운할 것 같다.

 

글/ 트렁크로드 이석원 lswcap@trunkroad.co.kr

트렁크로드

Trunkroad. 간선도로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간선도로는 도로망의 기본이다. 중요한 도시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듯 트렁크로드는 여행을 위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연결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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